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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일보]기획] 비정규직 제로시대 역행하는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기획] 비정규직 제로시대 역행하는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거리로 나간 노동자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2017년 08월 23일 00:05 수요일
            

▲ 17일 오후 송도국제도시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정문앞에서 개최된 '만도헬라 비정규직 투쟁문화제'에서 한국지엠지부 노래패 '참소리'가 노래공연을 펼치고 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는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라는 첨단 자동차 부품공장이 있다. 국내 유수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만도와 독일계 기업 헬라가 합작해 설립한 회사다.

공장부지는 외국자본을 유치한 덕분에 50년간 무상으로 임대해 쓰고 있다. 생산품목도 도로 상황·사각지대 감지, 자동주차시스템 등 최첨단 제품들로 즐비하다.

자율 주행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회사의 인기는 급성장하는 추세다. 지난 2015년 기준 매출액 4350억원, 당기순이익이 272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명성에 비해 초라한 구석이 많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할 것 같은 생산라인은 전원 하청업체 직원들로 채워왔다.

최근에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대규모 실직사태마저 발생했다. 담장 주변에는 몇 달째 노숙텐트가 즐비하고 여기저기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지금은 운전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회사제품을 사무직과 초단기 계약직들이 만들어내고 있다.

국제도시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전근대적 노사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모습이다.

● 한라그룹의 자회사로 출범한 만도헬라 

2008년 11월 한라그룹 계열사인 만도와 독일계 자동차 부품회사 헬라가 지분 50%를 각각 출자해 설립했다. 
만도의 모태는 정주영 고 현대그룹 회장의 동생인 정인영 씨가 만든 현대양행(주)이다.

이후 자동차 부품을 생산부는 만도로, 자원개발부는 한라그룹으로 각각 변신했다.

한 때 곡절을 겪으며 헤어졌던 두 기업은 2008년 재결합했다. 그러면서 같은 해 독일자본을 유치해 만도헬라를 출범시켰다. 

한라그룹은 재계 서열 30권에 드는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이다. 지주회사 한라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정몽원 회장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는 4촌지간이다. 만도헬라의 대표이사는 정몽원 회장의 처남인 홍석화씨가 맡고 있다. 

● 만도헬라 생산직은 '정규직 제로' 

만도헬라 직원들은 크게 관리직과 생산직 등 2개 직군으로 나뉘어 근무한다.

이중 관리직 300여명은 전원 만도헬라가 직접 고용한 정규직이다.

반면 생산라인에 투입됐던 350명 모두는 이 회사 직원이 아닌 하청업체 고용자들이다.

이들은 만도헬라와 도급계약을 맺은 서울커뮤니케이션과 HRTC 등 2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마저도 지난 7월10일 만도헬라의 도급계약 해지로 사실상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파업이 발생하자, 하청업체의 폐업에 이어 도급계약을 해지한 탓이다.

● 노동조합 결성 및 대응 

하루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던 생산직 노동자들은 많게는 주당 7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장 52시간 근로제한 규정을 훌쩍 뛰어넘는 고된 노동이었다.

언젠가는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헛된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노동자들은 급기야 지난 2월12일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협상을 요구했다.

그러자 하청업체 중 한 곳에서 고용종료 통지서를 보내왔다.

"회사 대표가 몸이 아파 회사 문을 닫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문을 닫으면 자연스레 소속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은 곧바로 "우리는 만도헬라 소속"이라며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하청업체측이 노조간부들을 다른 부서로 보내자 노동조합은 파업으로 대응했다.

이에 대해 만도헬라측은 관리직 직원과 단기계약직 직원을 생산라인에 투입했다.

그리곤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7월10일에는 도급계약을 해지한다는 공고문을 발표했다. 7월17일에는 직장폐쇄와 함께 "회사 내 출입을 금지한다"는 하청업체의 공고를 내다붙였다.

● 현대차그룹과 만도, 그리고 노동조합 

현대차그룹과 관계사들이 노동조합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주목할 만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그룹 내에는 국내재벌 중 유일하게 노무담당 부회장이 근무한다.

이 곳에서는 부품사의 노무관리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차 관련 부품사의 노사분규는 끊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24일에는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태에 개입한 혐의로 현대차 임직원 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현대위아, 현대모비스 등에서도 유사한 노사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현대차의 사내하청과 간접고용을 불법파견이라고 판시했다.
2012년 발생한 만도의 노조파괴 사례는 노동조합 역사의 중대사건으로 남아 있다.

●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반응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현대차 관계사와는 결을 달리한다. 문 대통령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비정규직 축소,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합활동 보장 등을 외치고 있다.
주무장관과 집권여당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간다.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은 지난 16일 이정미 정의당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만도헬라와 같이) 정규직이 한명도 없는 회사는 잘못"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에 앞선 지난 9일과 11일 인사청문회 등에서도 만도헬라 사태를 지목했다. 그러면서 "만도헬라의 불법파견 여부를 조사하고 법에 따라 엄중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만도헬라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우 원내대표는 "만도헬라가 정규직 제로공장을 만든 뒤 노동조합의 활동과 단체행동권을 무력화시켰다"고 질타했다. 
특히 "정규직 제로공장은 현대차 계열사가 가장 심하다"고 꼬집었다.

● 파견법 위반과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노동조합은 지난 3월 이후 세 차례 걸쳐 만도헬라를 파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해 놓은 상태다.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에 파견근로자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파견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7일에는 인천지방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만도헬라가 사용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했으니, 노동자들은 만도헬라 소속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하청업체 관계자는 "직접 생산공정이 아니라 단순 보조 작업에 투입된 것"이라고 항변한다. 
만도헬라 측의 생산과 지휘명령에 대해서도 "업무상 대화를 나눈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서울고법은 현대자동차 사건 판결을 통해 간접공정에 대해서도 파견법 위반을 인정했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직접 공정 뿐 아니라 출고, 포장 등 간접공정도 파견법 위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 유엔까지 나선 현대차 부품업체 사태  

문재인 대통령의 첫 다자외교 무대였던 지난 달 G20 정상회의에서는 의미심장한 의제가 제시됐다. 
'지속가능한 공급망'이라는 제목의 권고안이 그 것이다.
이 권고안은 다국적기업들이 원재료나 부품 조달을 위해 해외 공급망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도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부품업체 인권침해'를 구체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만도헬라 사태에 대처하는 한라그룹이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과 함께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들이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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